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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교류)사순5주간 수요일 말씀묵상

사순5주간 수요일 말씀묵상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31-42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39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40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벌써 꽤 오래전에 있었던 체험입니다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사실 이 체험은 지금도 역시 제 삶 속에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어머니가 사주셨던 양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다 늘어나서 신지 않고 장롱속에 모셔두었지만 ㅇㅈㅇ 이라는 제 이름 세 자에 대한 이니셜이 새겨진 양말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요즘 시대에 세탁소나 의상실에 맡기면 재봉틀로 순식간에 새길 수 있는 것을 일일이 손바느질로 한 수 한 수 놓은 어머니의 작품입니다. 신학교에 처음 들어 갔을 때 그곳은 여러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기에 행여나 양말이나(대부분 검은색 양말을 신기에 구분이 안됨) 속옷(특히 런닝은 대부분 같음)이 바뀔까봐 어머니는 그렇게 양말과 속옷에 일일이 제 이름 이니셜을 새겨 넣어 주셨습니다.

 

한 번은 신학교에서 외출 날이 되어 천안에 가서 동기 모임을 하고 술을 한잔하고 학교로 복귀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피곤한 상태로 저녁기도와 성체조배, 묵상, 로사리오 기도 등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왔죠. 샤워를 하긴 해야겠는데 몸이 많이 피곤하고 지쳐서 잠시만 침대에 누워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 꼭 애벌레가 허물을 벗듯이 꼼지락 거리며 겉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먼저 양말을 벗어 구석에 있는 빨래 통을 향해 던지고 나머지를 벗기 시작했죠. 어느덧 침대 아래에는 옷가지들이 너저분하게 널리게 되었고, 저는 샤워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진 채 조금씩 잠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제 눈에 확 들어 온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저만치 던져진 빨래통 근처에 떨어진 양말이었습니다. 포개진 양말 사이로 살며시 보이는 제 이름 이니셜 세 글자 ㅇㅈㅇ. 그 순간 저는 한땀 한땀 바느질로 이니셜 수를 놓으시며 기도하고 계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저를 사제로 만들기 위해 항상 잔소리와 기도를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 생각나니 도저히 그 양말을 계속 쳐다 볼 수 없었어요. 이후 저는 벌떡 일어나 양말은 다시 주워 빨래통에 가지런히 넣고, 옷고 걸어 놓고, 샤워도 하고, 술 한잔 해서 정신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취침 시간까지 꽉 채워 공부까지 하고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 어머니가 새겨주신 속옷과 양말이 하나씩만 남아 있습니다. 또 연세가 지긋하셔서 다시 수놓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양말에 새겨진 이니셜! 어쩌면 그것은 새기기도 어려웠겠지만 분명한 건 금방 닳아 없어진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새겨졌다면, 영혼에 새겨졌다면 과연 닳아 없어질까요? 마치 양말의 이니셜을 보지 않아도 어떤 때에 어머니의 말씀과 모습이 떠오르는 저처럼 말이죠. 하느님은 그렇게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사는 사제가 되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기도를 그렇게 들어주시려 하셨나 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세요. 여기서 진리는 하느님이신 예수님 당신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고, 당신이 사람들에게 주셨던 많은 가르침을 말하기도 합니다. 결국 이 말씀은, 당신만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당신의 가르침만이 사람들을 참된 자유로 이끌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일까요? 아마도 요즘의 우리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코로나의 공포로 부터의 자유’,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답답한 세상으로부터의 자유를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또 누구는 경제적 어려움에서의 자유’,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떠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우리를 속박하는 세상의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그래서 청하기도 해야겠지만, 그분이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는 참된 자유는 우리를 영원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그것은 이고 죽음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진리이신 당신과 가르침에 있다고 오늘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 가르침을 마음에 바느질 해달라고 청합시다. 그리하여 그 가르침을 사는데 있어서 나태해지거나, 죄를 지을 것 같은 상황에서 당신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합시다. “주님 제 마음에 닳아 없어지지 않을 당신 말씀을 바느질해 주소서. 그리하여 제가, 항상 저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성심을 기억하며 제자답게 살 수 있도록 도아주소서.”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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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이진욱미카엘

등록일2020-04-01

조회수2,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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