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라면 오늘부터 미사가 시작되었어야 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잠정적으로 20일 금요일까지 연기가 되었죠. 이제 형제 자매님들과 같이 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뻤었는데 많이 아쉬운 오늘입니다. 아쉬운 맘을 가진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겸손’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의 모습을 비판하십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말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지만 정작 생활하는 모습은 말과 다름니다. 사람들에게 더 짐을 지우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며 ‘내가 존경받는 사람이다.’ 라는 것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말하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는 모습을 볼 때면 감동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 낮은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면 당연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높은 사람이 낮추면 칭찬하고 낮은 자리의 사람들이 낮추면 당연하게 여깁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인데 말이죠
저도 생각해보면 어떤 신부가 될까? 라고 처음 고민했을 때 겸손한 사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에 사제들이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더 낮추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추는 것이 좋은 자리 앉으라고 권하면 거절하고 낮은 자리로 가고 그런 것들이 겸손일까? 진정한 겸손은 무엇일까?
그때 제가 한 모습들은 겸손된 자세가 아니라 소극적인 자세 남에게 결정권을 주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는 진정한 겸손이 아닙니다. 겸손한 척입니다.
제가 생각한 진정한 겸손은 한마디로 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누구인가? 내가 이 공동체 안에서 누구인가? 그 누구인지 알고 그만큼 내가 하느님 앞에서 인간일 뿐이고 이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 자각이 겸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나를 바라보면 한없이 작은 존재입니다. 당연히 겸손해지기 마련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제가 누구인지 안다면 내가 해야할 부분 안에선 확실하게 하는 동시에 내가 모르거나 배워야할 부분에 있어서는 배우며 자연스럽게 겸손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내가 누구인가 누구인지 아는 것 보다는 내가 누구여야 하는가? 에 집중하여 나를 포장하고 높은 사람을 지향하며 나를 높이는 것만 생각하곤합니다. 그것이 ‘재화’ 일수도 ‘명예’일수도 또는 그 어떤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에수님께서는 겸손하셨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아셨으며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확히 아시고 그대로 살아가신 분이십니다. 우리도 내가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누구인지 생각해 보시면서 ‘겸손’해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