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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식스 팩인 사람


마음이 식스 팩인 사람
    어느 별나라에서 온 멋진 외계인 청년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젊음을 유지한 채 400년을 죽지 않고 살아온 주인공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죽지 않고 몇 백 년을 산다면 행복할지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죽지 않는다는 것, 영생은 축복이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이대로, 영원히’란 것은 ‘지금’의 의미를 희석시켜 버리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산다면 내가 오늘 만난 사람들, 그들과 나눴던 대화, 그들과 함께 한 모든 일들이 의미가 없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은 굳이 오늘 다 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무슨 일이든 굳이 열정을 쏟을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다하지 못한 일은 다음에 하면 그만이고, 오늘 무언가 잘못되었어도 상관없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아니 사실은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별나라 외계에서 온 사람이 아닌, 영원하지 못한 유한한 ‘보통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소모하는 오늘은 다시는 올 수 없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일부러라도, 애써 오늘 맺힌 일은 오늘 풀어야 합니다. 원수진 사람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 내일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다른 뺨마저 돌려 대는 일, 또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는 일은 남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를 위한 일입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회복할 수 있는 다른 기회, 다른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럴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케이트를 처음 배운다고 할 때, 아무리 연습을 해도 좀처럼 늘지를 않고, 늘 넘어지기만 하면 “에이, 뭐 내가 이 나이에 올림픽에 나갈 것도 아니고, 그만 배울래.” 하면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접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당에서 구역장 · 반장 등 성당 봉사를 하다 보면, 그래선 안 될 일일 텐데 상식적이지 못한 터무니없는 일, 억울한 일, 서로 불목 하는 일 등 갖가지 일을 겪게 됩니다. 그러면 혹자는 “반장일 못 해 먹겠다.”고 손을 놓아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쉬고 있는 교우 중 적지 않은 분들이 “누구누구 보기 싫어 성당 못 나가겠다.”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렵다고 해서, 잘 안 된다고 해서, 보기 싫다고 해서 ‘회피’할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맞닥뜨려서 ‘극복’할 문제입니다. 극복함으로써 ‘면역력’ 내지는 ‘내성’(耐性)을 키울 일입니다. 힘들다고 계속 피하기만 하면 늘 제자리걸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얼굴 맞대기도 힘든데 다른 뺨마저 돌려 대라고? 하이고, 댁들이나 잘해 보세요. 난 여기서 그만 둘래요.”라고 할 문제가 아닙니다. 화해나 용서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잘 안 되는 일일수록 반복과 연습이 필요한 것이지요. 요즘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식스 팩! 이 식스 팩은 육체 근육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영혼 역시 반복 훈련을 통해 식스 팩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에는 몸뿐 아니라 우리 영혼과 마음가짐까지 식스 팩인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명찬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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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별빛

등록일2014-03-06

조회수6,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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