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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마태 6,34). 성경에서 내일이라는 날은 중요한 시간이 아니다. 내일이란 시간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미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중요한 시간은 항상 지금, 현재이다. 하느님의 구원도 내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재 주어진다. 따라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도, 회개도, 선행도 지금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마태 6,31).하고 말씀하신다. 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더욱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걱정한다는 것은 목숨이 아니라 재물에 대한 탐욕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구약성경에서 재물은 그 자체가 선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도 재물을 얻었다는 것을 크게 자랑하고 있었다. 하느님께서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 사랑하는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셨고, 당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에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어야했다. 그러나 재물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것이지만 축복의 결실은 아니었다. 오히려 재물 보다는 행복, 마음의 평화, 정의 등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음과 생명과 사랑과 같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지혜를 받아들였다.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지혜 7,9). 여기에서 지혜는 신적 근원의 진리이며, 하느님의 본성이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라고 말씀하신다.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곧 내일을 걱정하는 탐욕이다. 탐욕은 물질을 탐하는 것으로 구약 성서에서는 모두 중한 죄로 간주하였다. 탐욕이 자신이나 이웃에게 끼치는 해악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자도 탐욕을 이스라엘이 쇠퇴하여 바빌론에 정복당하는 주된 원인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성경은 재물을 탐함으로서 이웃과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물질에 대한 탐욕은 계약의 하느님을 모독하며 우상 숭배 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제1독서는 당신 자녀들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이사 49,15). 전주교구 김병환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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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별빛

등록일2014-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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