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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하여라



화해하여라
    오늘 복음 말씀 앞에 당장 드는 생각은 ‘내가 성을 내거나 바보라고 한 사람은 없었나? 멍청이라고 한 사람은 없었나?’입니다. 비록 죽도록은 아니지만, 굳이 미워하는 사람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있습니다.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이고, 그런 말씀 앞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재판이나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마지막엔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는 말씀에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볼멘소리가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렇게까지 하셔야 되는지, 오히려 항의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물론 ‘바보’, ‘멍청이’라고 하는 것은 종교적 의미에서 ‘머리가 빈 nom’, ‘하느님도 모르는 놈’을 뜻하기에 심한 욕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말씀 속에서 그 처벌이 두렵기 짝이 없습니다. 더구나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하시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다반사로 일어나는 내 일상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예수님께서 너무 정확히 찔러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큰 싸움이 있는 곳에서 원인을 알아보면, 지나가다가 어깨 한 번 부딪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엄청나게 미워하는데, 그 시작은 자기만 식사 자리에 빠뜨렸다는 것입니다. 힐끔 쳐다봤다고 때리고, 목청 높였다고 주먹이 날아가고,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평생 원수처럼 지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상이 다르면 처연하기 만한 글귀로 상대를 단죄합니다. 아니 어떤 땐 전쟁의 원인조차도 시시합니다. 물론 대단하게 보이는 명분을 당사자들은 내세우지만, 결국엔 자기 욕망 하나 더 채우기 위해 욕하고 싸우고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원인, 시작을 보면 너무나 작은 불씨일 뿐입니다. 아주 작은 부딪힘이 형편없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제 생각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상대방은 정말 악의 화신이고, 그 사람이 사는 삶의 방식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자비로운 웃음도 있으며, 선에 대한 갈증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또 봅니다. 내가 풀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이 평화롭지 않은 마음과 공격적인 성향은 정말 타당하고 정당한 것일까요? 내가 욕을 쏟아 붓는 그 사람은 욕먹을만한 뿔 달린 도깨비일까요? 나는 왜 계속 심판하고 있고, 더 큰 심판을 또 만들고 있으며, 그래서 내 마음은 지옥이 되어 있을까요? 엄청난 에너지의 낭비 속에 내 삶이 피폐해진 경우라면 잠시 멈추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불화의 원인이 엄청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은 원인을 스스로 크게 만들어 가는 중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 시작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한 움큼 정도의 것이었다면 정리하는데, 포기하는데, 이해하는데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내가 빚진 그 한 닢을 갚고 평화롭기를,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해가 질 때까지 怒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에페 4,26) 서울대교구 강귀석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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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별빛

등록일2014-02-16

조회수6,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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