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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성경 (2)

예수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자신들의 모습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오 16:23)

{마침내,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되살아난 당신을 본 이들의 말을 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코 16:14)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들이 기록한 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자들과 복음서 저자들은 자기의 일생을 바쳤다는 것이다.

 

복음사가(福音史家)들이 누구에게 기만을 당했다는 가정도 불가능하다. 그들은 진실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장소에 있었거나 지척(咫尺)의 거리에 있었다. 마태오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직접 보고 들었던 사실을 기록하였고, 마르코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베드로의 증언을 직접 듣고 기록하였다. 루카 역시 바오로 사도와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났던 인물로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로부터 직접 증언을 들을 수 있었고, 그는 또한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와도 절친한 사이였다.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스승을 제대로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영적으로 오시는 구세주를 기대하지도 않았고 다만 로마의 권력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어떤 위대한 분이 나타나 그가 왕국을 세우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새 왕국에서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기도 하였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스승을 맹신하여 잘못된 기록을 남겼다 하더라도, 사건을 목격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기록을 바로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복음은 완성된 것이고 불변하다

 

초대 그리스도교 작가(作家)들의 저서(著書)에 등장하는 조각조각 복음 인용을 합치면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4대 복음서를 거의 완전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설명하였다. 4,5 세기경 원본 복음서를 베껴 쓴 필사본들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고, 그때 필사본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서와 정확히 일치한다. 복음서는 2 세기에 최초로 라틴어와 시리아어로 번역되었고, 3 세기에 곱틱어(이집트), 4, 5 세기에 고트어,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되었는데 내용이 모두 동일(同一)하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항상 신중을 다해서 성서를 수호해 왔고 하느님의 말씀 이외의 것은 철저히 배제하였다.

 

성서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가톨릭교회는 언제나 변함없이 성서를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람이 그분의 계시를 기록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또 그렇게 가르쳐 왔다.

 

이런 사실을 입증하는 구절들은 성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신구약은 모두 말씀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 일을 기념하여 책에 기록해 두어라.} (탈출기 17:1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는 이 말을 조건으로 너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다.} (탈출기 34:27)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Holy Spirit)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마르코 12:35-37)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오 22:41-46, 루카 20:41-44). 여기서 예수님은 구약성서 시편 110장을 인용하여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직접적으로 선언하셨다.

{주님(LORD)께서 내 주군(Lord)께 하신 말씀: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시편 110:1)

시편 110 1절에서 주님(LORD)은 야훼(Yahweh, I am Who I am) 하느님, 주군(Lord)은 메시아(Messiah)인 예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마르코, 마태오, 루카 복음서의 기록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이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당신이 하느님(聖子)이심을 일깨워주신다. 시편에는 야훼 하느님께서 메시아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메시아가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무릎을 꿇린 다음 마침내 하느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다.” 사실 메시아는 다윗보다 작고 동시에 다윗보다 큰 분이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다윗 가문의 자손인 동시에 하느님의 유일한 아드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여전히 다윗의 주님(Lord)이다. 유태인들은 메시아(히브리어) 또는 그리스도(그리스어)가 다윗 왕의 후손이라고 믿었을 뿐 그분이 다윗의 후손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주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유태인 사회에서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결코 주님이라 부르지 않는다. 자식이 아버지보다 우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에서 다윗은 그의 자손에게 오히려 주님이라고 부른다. 다윗은 시편에서 메시아가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선언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자 동시에 인간이신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설교에서 당신은 다윗의 아들, 즉 사람인 동시에 다윗의 주님인 하느님이심을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시편 1101절에서 다윗이 예언한 모든 것이다. 유태인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거절하였으므로 예수님의 질문에 답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반박할 수도 없었다. 예수님의 이 설교는 유태인 계보 사회에 혼란을 주었으나 많은 일반 군중들은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는어떻게 다윗의 아들이 다시 다윗의 주님이 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태인들에게 이와 같이 명쾌한 답을 주셨고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마태오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그들이 직접 보고 읽어서 익숙해져 있는 구약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직접 증언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마태오 22:31-32)

 

예수님께서는 직접 구약의 기록들을 들추어가며 당신의 임무가 하느님에 말미암은 것임을 증명하셨을 뿐만 아니라, 유다인들을 확신시키려고 구약을 인용해 가며 간절히 호소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요한 5:39)

{그러면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요한 26:54)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요한 10:35-36)

 

예수님께서는 150 차례에 걸쳐 구약성서를 인용하여 구약이 진실로 하느님의 말씀임을 명확히 해 주셨다. 구약성서의 극히 일부에 대해서만 하느님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 등을 포함한 모든 예언서들과, 시편, 모세의 율법이 모두 하느님의 말씀임을 명백히 밝히셨다.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사목서간을 보내면서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 졌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 (2티모테오 3:16)

 

신구약의 이 모든 구절들은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말씀임을 분명히 하지만,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성서는 다른 어떤 경전보다 역사적이고 사실적이다.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따져본 비평가들조차 성서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틀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초월적 특징이 있음을 인정한다.

 

성서를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으로 가정하더라도, 우리는 성서에 등장하는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도저히 한 인간이 이룰 수 없는 큰 업적을 이루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가 갖는 의미를 성서를 통해 이해할 수도 있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오 16:18-19)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요한 14:26)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시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교회는 결코 잘못될 수 없다는 믿음을 그리스도인은 가지고 있다. 교회가 결코 잘못될 수 없다는 신앙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표한 교회의 믿음이며, 그것을 교회의 무류성(無謬性)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힘도 감히 누르지 못할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하셨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교회는 건재하다. 어떻게 단순한 한 인간이 3년의 활동(예수님의 공생활 3)으로 이와 같은 일을 이룰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성서라는 역사적 문건에서 예수님의 삶과 업적, 또 그분의 신성(神性)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의 모습을 취한 하느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결코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없는 교회(교회의 무류성)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아우구스티노(Augustine, 354-430) 聖人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복음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Contra Ep. Fund. 5). 따라서 예수님께서 세우셨고 그분께서 권위를 부여해 주신 교회만이 진정한 성서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

 

1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공표한 성서에 관한 교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교회의 권위로 이 책들을 정본(正本)으로, 또한 신성(神性)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책들은 한 치의 틀림없이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진리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성령(聖靈)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 이 책들의 진정한 저자는 하느님이시며, 이렇게 말씀이 교회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레오 13세 교황은 전 세계 주교들에게 보낸 교령에서 성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성령께서 친히 성서 저술가들을 격려하고 고무하시어 그들이 기록하도록 하셨고, 기록하는 동안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저자들이 자기가 할 일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충실하게 저술에 전념하도록 도우셨다. 성령께서는 오직 진실만을 정확한 언어로 기록하도록 도우셨으므로 성서에는 당신이 뜻하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없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성서 전체가 하느님의 말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성서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당신께서 직접 종이에 성서를 기록하셨다.” 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시어 그들이 성서라는 큰 책에 당신께서 포함되기를 원하시는 내용들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주저자(主著者)는 바로 하느님이다. 성서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내용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 오류가 조금도 있을 수 없는 진실이다.

 

물론 후대의 필사본과 번역서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회의 권위가 인정한 필사본과 번역서라면, 거기의 오류가 성서의 견고함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원본과의 비교 연구로 쉽게 수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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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Y안드레아

등록일2013-07-12

조회수7,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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