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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제도 (2)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칠성사

 

신약성서에서 각 성사의 개별적 설명과 칠성사 목록을 찾을 수는 없다. 또 초대 교회 기록자들이 칠성사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지도 않았다. 사실 일곱 가지의 성사가 있다는 것은 12세기에 기록된 문서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칠성사에 관한 12세기 이전 문서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그 이전에 칠성사가 집행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식품의 가치, 비타민, 열량, 균형 잡힌 식단 등에 대한 중요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20세기 이전에 인류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20세기를 전후로 인류의 일반적 식생활 문화가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수백 년 동안 칠성사가 교회에서 집행되었지만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들이 성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대를 12세기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16세기 종교혁명(하느님의 계명은 언제나 진리이며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종교에는 혁명이 있을 수 없다)이 일어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모든 그리스도인은 칠성사 교리를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중요한 사실은 칠성사가 종교혁명 때 처음 도전을 받았다는 것이다. 16세기에 로마교회는 물론 그리스분파주의(Schismatical Greek, 이단), 네스토리우스주의(Nestorian, 이단) 그리고 그리스도단성론(Monophysite, 이단) 신봉자들 조차도 칠성사를 믿고 있었다. 그리스분파주의는 이미 4세기에 분열의 길로 들어섰고 1472년 동방정교(Great Eastern Schism)라는 이름으로 마침내 로마와 결별하였다. 동방정교도 칠성사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는 결코 로마교회의 교리를 따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분파주의는 단 한 번도 로마교회를 따르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네스토리우스주의와 그리스도단성론은 5세기에 이미 로마에서 멀어진 이단임을 기억하면 4~5 세기경에 이미 모든 가톨릭교회가 칠성사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초대교회 주교들이 혁신적인 것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극단적인 보수 성향을 보였다는 의견에 모두들 동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 또는 단체가 나머지 교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새로운 성사를 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전(聖傳)은 그리스도로부터 왔고 신약성서 역시 성전의 기록이다. 칠성사는 성서와 성전이 뒷받침하는 하느님께서 직접 세우신 제도이다.

 

왜 칠()인가?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칠성사를 제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인간을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교회 통치와 확장을 위해 칠성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초자연적인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여신 것이다.

 

이 초자연적인 삶은 세례성사로 시작된다. 견진성사는 세례성사를 받은 영혼에게 힘을 주고 성숙시킬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성체성사는 규칙적으로 영양을 공급하여 초자연적 삶을 사는 영혼을 양육한다. 그러나 때로 초자연적 삶을 사는 영혼이 죄로 인해 약화되기도 하고 대죄를 지어 초자연적 삶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약해진 은총 또는 초자연적 삶을 박탈당한 영혼의 병은 고백성사로 고쳐지고 회복된다. 죽음이 임박했을 경우 병자성사를 통해 영혼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사회적이다. 개인의 자격으로 초자연적인 삶을 사는 세례 받은 인간의 영혼은 마찬가지로 교회라는 초자연적 사회에서 살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치할 목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신품성사를 제정하셨다. 또한 교회는 혼인과 출산을 통해 자라나야 하므로 남편과 아내의 결합을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혼인성사를 제정하셨다.

 

성사의 내용(matter)과 형식(form)

 

성사는 밖으로 나타나는 의식이고 표징이므로 내용(matter)과 형식(form)이 있다. 성사는 행위와 말로 이루어진다. 행위를 성사의 내용 그리고 말을 성사의 형식이라고 한다. 따라서 세례성사에서 물과 물을 붓는 행위는 세례성사의 내용이 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말하는 기도는 세례성사의 형식이 된다.

 

성사가 영혼에 부여하는 특징

 

세례성사, 견진성사 그리고 신품성사를 받으면 우리 영혼에 어떤 특징이 새겨진다. 이 특징을 인호라고 하는데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인호는 영혼에 새로운 위엄을 주고 영혼을 완전하게 하며 아름답게 꾸미는 실제의 어떤 특징이다.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인 즉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표시하는 인호가 영혼에 새겨진다.

견진성사로 그리스도의 군대가 되었음을 표시하는 인호가 영혼에 새겨진다.

신품성사로 하느님의 사제(하느님께 제사를 올리는 사람) 임을 표시하는 인호가 영혼에 새겨진다.

 

한 번 영혼에 새겨진 인호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므로 이 세 가지 성사는 두 번 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

 

산자의 성사와 죽은자의 성사

 

세례성사와 고백성사는 죽은자의 성사로 불린다. 세례성사를 받기 전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지 못하므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고 초자연적 삶을 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대죄를 지은 사람의 영혼도 하느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다. 세례성사를 통해서 영혼이 초자연적 삶을 시작하여 새 생명을 얻게 되고, 고백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그분의 은총을 회복하여 영혼이 다시 초자연적인 삶을 살 수 있으므로 이 두 성사는 죽은자를 위한 것이다.

 

반면 나머지 다섯 성사는 산자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머지 성사는 영혼이 은총의 상태에 있는 사람에 한하여 주어지기 때문이다. 견진성사나 혼인성사 전에 대죄가 있는 사람이 반드시 고백성사를 받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사는 하느님의 은총이 인간의 영혼으로 전달되는 공식 통로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어 성사를 제정해 주신 하느님께 큰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고 성사를 충분히 활용하여 그분께 감사를 표현하여야 한다. 초자연적 삶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성사를 받을 때마다 우리 영혼의 초자연적 삶이 양육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각 성사는 목적에 맞는 고유한 은총을 영혼에게 준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성사의 은총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자만이다. 성사의 은총 없이 살아가겠다는 마음가짐은 범죄에 해당되는 방심이다. 그리스도의 불타는 인간 사랑의 결과인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을 거절하는 것은 배은망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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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Y안드레아

등록일2013-06-03

조회수7,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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